새봄에는 지금 내가 가진 '작은 것들'에서 위대함을 찾고, 그래서 더욱 행복해졌으면 좋겠습니다.
마음의 겨울도 봄이 머지 않은 2월, 민화위 뉴스레터 「마음」 제26호를 전해드립니다.
_하늘지기 권두언 《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하여》
강주석 베드로 신부 (의정부교구 민족화해위원장)
메리놀외방전교회와 이승만 대통령의 인연은 태평양 전쟁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승만은 당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미외교부 위원장으로 미국 정부를 상대로 외교적인 차원에서 독립운동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평안도 지역에서 활동하다가 본국으로 강제 추방당한 미국 신부님들이 이승만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한국을 그리워했던 선교사들은 독립을 위해 활동하던 이승만과 교류했고, 캐롤 몬시뇰과 같은 경우, 훗날 자신이 ‘망명 애국지사’ 이승만의 독립운동을 지원했다고 회고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1952년 6월에 메리놀회원들이 부산에서 작성한 일기를 보면, 이승만 정부에 대한 당시 선교사들의 변화된 시각을 알 수 있습니다.
이번 겨울, 제가 살고있는 갈곡리엔 영하 20도에 가까운 매우 추운 날씨가 여러 날 지속되었습니다. 어찌나 춥게 느껴지던지 매일 아침 옆 마을을 넘나들며 한두 시간씩 묵주기도를 하던 습관에 제동이 걸렸습니다. 두꺼운 양말을 신어도 발끝이 아렸고 장갑을 껴도 손가락이 얼어붙는 느낌이었습니다. 털 귀마개는 했지만 찬공기에 노출된 이마며 코끝이 시려 급기야 기온이 올라가는 낮시간으로 묵주기도를 옮겨야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추운 날씨에 저의 연약한 마음이 굴복해 버렸을 때, 문득 기억 속에 떠오른 분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70여 년 전 차가운 북녘땅에서 목숨을 잃으신, 이른바 ‘죽음의 행진’에서 순교하신 외국인 선교사들입니다. 이분들은 1950년 10월 31일부터 11월 17일까지 북한군의 포로가 되어 평안북도 만포에서 중강진을 거쳐 하창리까지 혹한의 날씨와 굶주림을 견디며 무려 280km나 되는 압록강변의 산길을 고통스럽게 걸어야만 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1월 11일 국방부 업무보고에서 “북핵문제가 더 심각해지면 대한민국이 전술핵을 배치한다든지 자체 핵을 보유할 수도 있다.”며 “만약 그렇게 된다면 우리 과학기술로 더 이른 시일 내에 우리도 핵무기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은 대한민국 대통령이 역사상 처음으로 독자적 핵무장 필요성을 공식 언급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 과연 한국은 북핵 위협에 맞서 독자적 핵무장을 할 수 있을까? 더 나아가 한국의 핵무장은 우리의 국익에 도움이 되는 것일까?